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퇴사율이 급증했던 시기를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이 현상을 ‘대퇴사 시대(The Great Resignation)’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4년 후, 상황은 반전됐습니다. 이직보다 잔류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죠. 이를 두고 영국의 최고 HR 전문 기관 CIPD에서는 “대잔류 시대(The Big Stay)”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CIPD의 2024년 <Labour Market Outlook>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과열되었던 채용 시장이 진정되며 공석 수와 이직률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직자의 급여 상승률 하락, 5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한 미국 기업들의 정리 해고, AI의 본격적인 도입 등으로 가중된 고용 불안이 대잔류 시대의 주요 요인으로 꼽힙니다.
Z세대 직원들의 가치관 변화 역시 대잔류 시대를 이끄는 중요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팬데믹 시기 잦은 이직을 단행했으나 성장 기회나 워라밸에 대한 기대가 쉽게 충족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고, 이젠 새로운 환경보다 기존 조직에서 더 깊은 몰입과 의미, 공동체적 연결감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진 것입니다.
대잔류 시대의 HR 전략,
잔류를 몰입으로 전환하기
대잔류 시대에 기업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주저하는 잔류(hesitant retention)”입니다.
갤럽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머무르는 근로자는 늘어났지만 그중 67%는 여전히 업무에 몰입하지 않습니다. 자발적인 잔류가 아니라 고용 불안, 경력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머무르는 것이죠. 이러한 상태의 직원은 몰입도와 생산성이 낮고, 혁신성이 떨어지며 변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대잔류 시대에도 조직에 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기업엔 직원들의 잔류를 목적 있는 몰입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죠. 직원이 스스로를 가치 있다고 느끼고, 커리어 패스를 명확하게 그릴 수 있다면 조직에 자발적으로 머물며 더 높은 충성도와 생산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교육, 내부 이동 프로그램, 커리어 코칭, 복지 강화 등에 재투자해야 합니다.
이미 대잔류 시대를 기회로 삼고 있는 기업들은 많습니다. 내부 인재를 육성하고,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며, 조직 문화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죠. 이번 아티클에서는 유수의 글로벌 기업의 대잔류 시대 대응 전략을 4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IBM: AI로 업무 재배치 &
보상 체계 개편으로 의욕 고취
IBM은 업무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동기 부여에 집중합니다. IBM은 최근 HR 워크플로우에 AI 에이전트 AskHR을 적극 도입했습니다. 스프레드시트 분석, 리서치, 이메일 작성 등의 반복 업무를 AI가 수행하도록 했고, 이를 통해 확보한 여유 인력을 전략 분야에 재배치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력 감축은 없었으며, 단순 업무에서 벗어난 직원들은 각자의 핵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 배치되었습니다.
나아가 IBM의 컨설팅 부문 IBM Consulting은 2025년부터 성과 기반 보상 프로그램 GDP(Growth-Driven Profit)를 개편했습니다. 매년 '비즈니스 성과', '역량', '행동'을 평가하여 상위 15%의 직원에게 GDP 보상의 2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역할이 아닌 기여 중심의 보상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IBM은 AI 도입을 통한 업무 재배치와 성과 중심의 보상 체계를 통해 직원들이 조직 내에서 더 의욕적으로 의미 있는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나가고 있습니다.
로레알: 내부 이직 플랫폼을 통한 성장 기회 제공
로레알(Loreal)은 직원이 회사를 떠나지 않고도 주도적으로 커리어를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로레알의 내부 이직 플랫폼 POP(Positions Open Portal)을 통해서 로레알의 직원들은 POP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역량과 관심사에 맞는 다양한 직무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로레알은 이 과정 속에서 조직 내 숨겨진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죠.
로레알은 전체 채용 공고의 81%를 POP에 먼저 게시합니다. 외부로 공고가 나간 경우도 그중 75%가 내부 지원자로 채워집니다. 직원들은 동료들과 공고를 공유하고, 공고에 지원하며, 친구나 가족을 추천하는 등 내부 채용에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직원들의 커리어 목표에 부합하는 공석에 대한 맞춤형 알림까지 제공하죠. 로레알은 이 모든 과정에서 HR의 개입을 줄이고 직원에게 더 많은 주도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로레알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지 않고도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내부 이동 가능성이 낮은 경직된 조직은 비자발적 잔류의 가능성이 크지만, 로레알의 사례는 그 반대입니다. 내부 이동으로 성장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로레알 직원들의 조직 헌신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롤스로이스: 정서적 연결을 통한 소속감 강화
롤스로이스(Rolls Royce)는 소속감에 집중하여, 직원이 자신을 조직의 진정한 일부라고 느끼고 자발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강력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Being Like Me(나답게 존재하기)’ 플랫폼을 통해서인데요. 이는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운영되는 스토리 공유 플랫폼으로, 직원들은 이곳에서 커밍아웃 경험, 신체적 차이를 안고 살아가는 이야기,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등 자신의 삶을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이 플랫폼을 통해 롤스로이스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환대하는 조직, 출근할 때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조직이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롤스로이스 직원들은 조직에 머무르는 이유를 새롭게 정의하게 됩니다. 존중받는 인간으로서의 감각, 공감과 연결의 문화, 그리고 심리적 안전감이 조직에 머무는 주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를 긍정받는 경험이 곧 조직에 대한 정서적 연결로 이어져, 자신의 가치가 조직의 가치와 겹쳐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롤스로이스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머물고 싶어지는 조직으로, 직원은 자신을 지지하는 이 조직에 기여하고자 하는 헌신적인 구성원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옐프: 직원 피드백에 기반한 실질적 조치로
업무 몰입도 향상
미국의 지역 리뷰 플랫폼 옐프(Yelp)는 직원들이 기업에 머무르는 대잔류 시대라고 해서 조직에 대한 기대도 낮아진 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옐프는 동기 유지, 경력 정체 방지, 번아웃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소통에 힘쓰고 있는데요. 다양하게 활성화된 피드백 채널을 통해 직원의 몰입을 강화하는 전략입니다. 옐프는 연례 설문조사, 대규모 사내 이벤트, 포커스 그룹이나 소규모 피드백 세션 등을 통해 기업이 직원들의 의견을 다각적으로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옐프가 팀 리더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듣기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옐프의 Chief People Officer 카르멘 아마라는 한 세미나에서 “직원들은 피드백을 제공했을 때 변화가 없으면 지친다. 핵심은 직원의 인사이트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는데요.
구체적인 프로세스로 옐프는 리더들에게 다음과 같은 ‘1-2-3’ 피드백 룰을 제안합니다.
하나의 이슈를 선택하고
두 개의 해결 방안을 고민한 후
세 가지 후속 조치를 약속하라
이 과정에서 옐프의 직원들은 ‘내 목소리가 실제 변화를 만든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조직의 변화를 이끄는 주체적 참여자로 인식하죠. 이와 같은 활성화된 피드백 채널과 실질적 대응 프로세스를 통해, 옐프는 조직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직원이 아니라 머물기를 원하는 직원, 더 나아가 조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직원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습니다.